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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어머니는 어떤 아들을 원을했까?
[221231호] 2022년 12월 31일 (토) 12:13:23 한효섭 저널리스트 kbshdtv@hanmail.net

 

돌아가신 어머니는 어떤 아들을 원했을까?

 

한효섭칼럼

   

대한민국헌정회전국지회장협의회 회장 한효섭

1970년 24살 때 한얼노인대학과 한얼재건중고등학교를 설립하여 주야로 열심히 교육사업과 봉사활동에 전념하고 있을 때, 어머니께서 춘해병원에 입원하셨다. 어머니를 간호해주던 간호학생이 어머니께서 무척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병문안을 오라는 성화에 병원을 들렀더니 저 간호 여학생이 어떠냐며 소개해 주셨다. 어머니의 뜻대로 한두 번 만났고 그러는 사이에 어머니는 퇴원하셨다.

학교 일에 전념하던 필자는 결혼은 생각하지 않았던 터라 간호학생과 만나고 밤에 들어와서 어머니께 “그 학생 못 쓰겠다. 미니스커트를 입고 팝송을 듣고 있어 헤어져야겠다.”라고 하자 어머니는 대학교에서 메이퀸에 당선된 미인이고 미니스커트는 그 당시 유행인데 무슨 상관이냐고 얌전하고 착한 학생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팝송은 무엇이냐고 묻기에 미국 가요라고 하며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사실 당시 한창 팝송이 유행하던 시절이어서 문제 될 것이 전혀 없었지만 시골에서 부산으로 와서 고학으로 대학생이 되었으면 공부나 열심히 해야지 팝송이 무엇이냐고 괜한 트집을 잡았다. 어머니는 아쉬운 듯 “그 학생 참으로 괜찮던데.”하시며 그 여학생을 며느리로 삼고 싶은 듯한 모습을 보이셨다.

어머니는 그날 밤새 아쉬운 기색을 보이시며 실망과 절망으로 밤잠을 설치며 고민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잠을 설치고 아침 일찍 일어나 양치질을 하시더니 쓰러져 의식을 잃으셨다. 어머니께서 그토록 좋아하시던 여학생이라 어머니가 쓰러지셨다고 연락을 하였더니 그 여학생의 스승인 범일병원 원장이 달려와 평소에 앓고 있었던 심장병 탓이라고 하였다. 필자는 학교에서 아침 조례를 하고 첫 수업을 하고 있는데 학교 밑에 거주하던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내려갔다. 하지만 그 때는 이미 숨을 거두신 뒤였고, 진료를 받으셨으나 어머니께서는 하루 만에 돌아가시고 말았다.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필자는 누님과 가까운 일가에게 연락하였다. 그리고 필자는 학교에 가서 밤 10시까지 10시간 수업을 하고 내려갔다. 그 당시 한 반에 60명이 넘는 불우청소년이 주야간으로 열심히 공부를 하는 모습에 필자가 빠지면 10시간이며 600명의 학생이 보강이나 자습을 해야 했다. 누님과 일가친지들은 뇌진탕을 심장병으로 오진한 의사의 의료사고라고 야단이었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에 어머니께서는 돌아가신 어머니 곁을 지키며 울고불고 통곡하고 의사를 원망하며 야단을 떠는 모습보다도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을 돌보고 가르치며 조용히 처리하는 아들의 모습을 더 원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10시간 수업을 마쳤다. 그 후 안절부절 하던 간호학생과 의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어머니 곁을 지키며, 이틀 후에 백운공원 묘지에 모셨다. 그 날도 역시 다시 학교로 돌아가 학생들을 가르쳤다.

누님과 일가친척들은 평소에 남 탓하지 않는 필자의 성격과 생각을 아는지라 협조하여 주었고 어머니 역시 아들의 결정과 행동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라고 믿었다. 누군가는 싸늘한 어머니의 시체를 두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필자의 모습을 못 마땅히 바보라고 생각하였겠지만 이미 돌아가신 어머니께서는 필자가 옆에서 울고 불며 애도하고 몸부림친다고 해서 다시 살아나시지 않으실 것임을 안다. 어머니께서도 자기 곁을 지키는 아들의 모습보다도 갑자기 대책 없이 열악한 환경 속에 공부해야 할 학생들을 가르치는 아들의 모습을 더 원하고 좋아하리라는 필자만의 믿음이 있었다.

필자는 평소에 어머니께서 좋아하셨던 그 여학생과 결혼하는 것이 어머니에 대한 효도이며 어머니 역시 필자에게 착하고 예쁜 아내를 선물해 주고 운명하셨다고 생각했다. 필자는 어머니의 인연으로 맺어진 그 여학생에게 청혼을 하였다. 22세 되는 여학생은 흔쾌히 승낙하여 한 달만에 결혼을 하고, 그 여학생과 어머니 산소를 찾아가 성묘하고, 애도하고, 제사를 지냈다.

필자는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필자의 선택을 자랑스럽게 여기실 것이고 훌륭한 아들이라고 생각하리라 믿고 어머니가 선택한 여학생을 아내로 맞이하고 어머니의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그것이 필자의 애도와 추모하는 방법이었다. 그것은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 현명한 선택이 되었다. 이미 고인이 되신 어머니가 원하는 아들의 모습이었다고 생각한다.

요즈음 사고로 인한 애도와 추모의 모습을 보면서 똑같은 사고가 필자에게 다시 발생해도 필자는 똑같은 방법을 선택했을 것이라 되새긴다. 그러기에 지금은 참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산 한얼인 한효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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