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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위대한 한국인을 눈물로 추모하며 이동욱작가의 고백
[231101호] 2023년 11월 01일 (수) 11:21:01 한효섭 칼럼 리스트 kbahdtv@hanmail.net
 
 
'한 위대한 한국인을 눈물로 추모하며' 이동욱 작가의 고백
 
한효섭 칼럼<380>
 
   
12대국회의원회총무 겸 운영의원회부의장 -헌정회전국지회장협의회장
세상을 살다 보면 우리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고, 모르기 때문에 큰 죄를 짓고 상대에게 엄청난 상처와 고통을 주기도 하고 가짜뉴스와 감언이설에 속아 자신과 나라를 망치기도 한다. 모르는 것은 죄가 되지 않지만 알려고 하지 않고 반성과 성찰이 없는 것은 큰 죄악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동욱 작가의 글을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지금부터 약 55여 년 전 1965년 7월 19일 오전 0시 35분 하와이의 한 노인 요양원에서 나이 아흔의 한국인 환자가 운명을 달리했다. 서거하기 한 달 전부터 피를 토했다. 그가 숨을 거두기 하루 전인 7월 18일엔 너무 많은 피를 토하기도 했다. 그의 생애 마지막 임종을 지켜보는 이는 평생동안 곁에서 돕고 수발하던 부인과 대(代)라도 잇겠다며 들인 양자와 교민 한 사람밖에 없었다. 마지막 호흡을 크게 한 번 들이쉬더니 이내 눈을 감았다. 파란만장한 길을 함께 걸어오며 어떤 어려움에도 우는 법이 없었던 아내가 오열했다.
 작가 이동욱씨는 국부 이승만의 영결식의 한 장면을 이렇게 기록했다. 한 미국인 친구가 울부짖었다.
 "내가 너를 알아! 내가 너를 알아! 네가 얼마나 조국을 사랑하였는지! 그것 때문에 네가 얼마나 수많은 고통을 겪어 왔는지! 바로 잃어버린 조국, 빼앗긴 국토를 되찾으려는 그 애국심 때문에 네가 그토록 온갖 조소와 비난을 받으며 고난의 가시밭길을 걸어온 것을 내가 알아.“
 그 미국인은 장의사였다. 그는 1920년에 미국에서 일하다 죽은 중국인 노동자들의 유해를 중국으로 보내주고 있었다. 그런데 중년의 조선인이 찾아와 중국인 유해를 안치할 그 관(棺)에 숨어 상하이로 가겠다고 했다. 한국 독립운동을 하는데 일본이 자신을 수배 중이라고 했다. 그가 바로 조선인 이승만이다. 이승만은 실제로 관에 들어가 상하이 입국 밀항에 성공하였다.
 "너의 그 애국심 때문에 네가 얼마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고, 또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비난을 받아 왔는지 나는 안다."라는 피를 토하는 듯한 절규! 이 절규는 그냥 넋두리와 푸념이 아니라 가슴 깊은 곳에서 나온 통한의 절규였다. 2019년 7월 15일 아침, 서울 국립 현충원 ᆢ이승만 초대 대통령 묘소를 찾았다. 나흘 뒤면 그의 50주기다.
 이동욱 작가는 이 대통령에 대해 부정적 얘기만 듣고 자랐다. 그의 생애 전체를 보고 머리를 숙이게 된 것은 쉰이 넘어서였다. 이 날 아침 이 위대한 대통령 묘 앞에서 그는 "만약 우리 건국 대통령이 미국과 국제정치의 변동을 미리 내다 보는 혜안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 자체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였기에 그만이 할 수 있는 건국이었기에 이 역사의 물음 앞에 머리를 가로 저으며 흐느끼고 말았다. 그 없이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그 없이 우리가 자유 민주 진영에 서고, 그 없이 전쟁에서 나라를 지키고, 그 없이 한·미 동맹의 대전략이 가능했겠느냐는 질문에 누가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을까? 추모비에 적힌 지주(地主) 철폐, 교육 진흥 제도 신설 등 지금 우리가 디디고 서 있는 바탕이 그의 혜안에서 나왔다. 원자력발전조차 그에 의해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무지한 나라에 태어났으나 그렇게 살기를 거부했다.
 열아홉에 배재학당에 들어가 외국인들의 눈을 통해 나라 밖 신세계를 처음으로 접했다. 썩은 조정을 언론으로 개혁해보려다 사형선고까지 받았다. 그러한 상황의 감옥에서 낮에는 심문을 당하고 밤에는 영어사전을 만들었다. 이 대통령은 독립하는 길은 미국을 통하는 길밖에 없다고 믿었기에 1905년 나이 서른에 조지 워싱턴 대학에 입학하고 하버드대 대학원을 거쳐 프린스턴대에서 국제정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41년 미국에서 'JAPAN INSIDE OUT
(일본의 가면을 벗긴다)'을 펴냈다. 그 책에서 그는 "일본이 반드시 미국을 공격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책이 나온 지 넉 달 뒤 추측이 아닌 실제로 일본이 진주만을 폭격했다. 미국 정치인들은 한국인 이승만을 놀란 눈으로 새롭게 보았다.
 이 대통령은 1954년 이 책의 한국어판 서문을 이렇게 썼다. "일본인은 옛 버릇대로 밖으로는 웃고 내심으로는 악의를 품어서, 교활한 외교로 세계를 속이는, 그러면서도 조금도 후회하거나 사죄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을뿐더러… 미국인들은 지금도 이를 알지 못하고 일인들의 아첨을 좋아하며 뇌물에 속아 일본의 재무장과 재확장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데도…심지어는 우리에게 일본과 친선을 권고하고 있으니…." 이 대통령은 한국어판 서문에서 '우리는 미국이 어찌 하든지 간에 우리 백성이 다 죽어 없어질지언정 노예만은 되지 않겠다는 각오로 합심하여 국토를 지키면, 하늘이 우리를 도울 것이다"라고 끝을 맺었다.
 뱁새가 봉황의 높은 뜻을 어찌 알랴마는, 관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반일(反日)로 살아온 그를 친일(親日)이라고 하고, 평생 용미(用美)한 그를 친미(親美)라고 하는 것은 사실을 모르거나 알면서도 매도하는 것이다.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는 "어지러운 구한말 모두 중, 일, 러만 쳐다보고 있을 때, 청년 이승만은 수평선 너머의 미국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그를 19세기 한국의 콜럼버스라고 부른다. 우리 수천 년 역사에 오늘날 번영은 오로지 대한민국을 건국한 이 박사의 공로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국민은 이 위대한 지도자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했다. 거인이 이룬 공(功)은 외면하고 왜곡하며, 과(過)만 파헤치는 일들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건국 대통령의 50주기를 쓸쓸히 보내며 그에게 감사할 줄 모르는 우리의 자해(自害)와 업(業)을 생각한다.
 이승만 대통령은 자리에서 미 하와이로 물러난 후 한 겨울에 난방할 땔감도 없었다. 하와이에선 교포가 내어 준 30평짜리 낡은 집에서 궁핍하게 살았다.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의 친정에서 옷가지를 보내줄 때 포장한 종이박스를 옷장으로 썼다. 교포들이 조금씩 보내준 돈으로 연명하며 고국행 여비를 모은다고 5달러 이발비를 아꼈다. 늙은 부부는 손바닥만한 식탁에 마주 앉아 한국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렸다. 그렇게 5년이 흘렀다. 이 대통령이 우리 음식을 그리워하자 부인이 서툰 우리말로 노래를 만들어 불러줬다고 한다. 이 대통령도 따라 불렀던 그 노래를 이동욱 작가가 전했다.
 ‘날마다 날마다 김치찌개 김칫국/ 날마다 날마다 콩나물국 콩나물/ 날마다 날마다 두부찌개 두붓국/ 날마다 날마다 된장찌개 된장국.’
 아무도 없이 적막한 그의 묘 앞에 서서 이 노래를 생각하면 목이 메인다. 당신들은 이승만이라는 세기적인 걸출한 위인이 있어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었다는 걸 아시는가? 대한민국을 찾아주고 이 나라를 건국한 세계인이 존경했던 한 민족 어버이 이승만 박사는 개, 돼지로 전락한 한국인들의 배신으로 이역만리에서 이렇게 세상을 떠났다.
 
 건국의 어버이를 추모하며…. 우리 모두가 사심을 버리고 대한민국을 헌신한 선조들을 다시 한 번 함께 생각하고 반성과 성찰의 기회를 가져 그들의 헌신과 애국심이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
<부산 한얼인 한효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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