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액요구와 민원성 법안 봇물 & ‘이해찬 법안’에 지자체 강력 반발

  여야 선심공약 '돈줄 잡기' 싸움…내년 예산안 ‘시계 제로’

  내년 예산 심의가 표류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 각당 대선 후보의 선심성 공약을 관철하기 위해서다. 여기에 상임위별로 지역 민원 처리를 위한 법안들이 슬그머니 올라오면서 ‘돈줄’을 쥐기 위한 주도권 다툼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여야 모두 증액 요구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가 당초 합의한 내년 예산 본회의 처리 시한은 이달 22일이다. 하지만 양당은 예결위 처리 시한인 19일까지도 예결위 계수조정소위에 각당 의원을 몇 명 넣을지를 놓고 마찰을 빚고 있다. 새누리당은 소위가 13명으로 구성될 경우 전체 국회 의석 비율에 맞춰 새누리당 7명, 민주당 5명, 비교섭단체 1명으로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민주당은 이 숫자가 각각 7명, 6명, 1명으로 이뤄져 여야 동수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선진통일당과 합당해 총원이 늘었으니 소위에서도 과반이 돼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민주당은 여야 동수를 유지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양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22일 내년 예산의 본회의 처리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졌다. 소위에서 예산안을 검토하는 작업에만 최소 5일 이상 걸리기 때문이다. 대선 후보 등록일(25~26일) 이후에는 예산 심의 자체가 중단돼 법정 시한인 12월2일 이내에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여야 모두 정부가 9월에 제출한 예산의 대폭적인 증액을 요구, 대선 이후에도 신속한 예산 심의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새누리당은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에 4조2732억원을 추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원내대표는 “가계대출 연체율이 심각한 상황에 도달하고, 자영업자 문제가 굉장히 악화했다”며 “(정부가) 합의하든 안하든 꼭 밀어붙일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공약으로 내세운 과학기술 고급 일자리 창출에 3575억원, 기초생활보장제도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에 1조290억원이 각각 들어간다. 민주당은 12조원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반값등록금, 0~5세 아동 무상보육 등 문재인 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약 실현을 위해서다.

  지역 민원성 법안 봇물

각 상임위에서는 지역구 표를 의식한 의원들이 민원성 법안을 상정하고 있다. 이철우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달 말 국토해양위원회에 대표 발의한 ‘도로법 개정안’은 국도의 관리주체를 지방자치단체에서 국가로 바꾸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향후 5년간 2조5000억원의 예산을 추가해야 한다.

박상은 새누리당 의원이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 대표 발의한 ‘2013 충주 세계조정선수권대회,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2015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지원법’은 대회 경기장 신·개축 비용의 국가 부담률을 30%에서 75% 이상으로 높이는 내용이다. 이 법안에는 여야 가릴 것 없이 해당 지역구 의원 55명이 사인했다.

  정부, 세종시 이전까지 겹쳐 진퇴양난

정부 관계자는 “대선이 있는 해마다 벌어졌던 졸속 심사, 날치기 통과, 민원 예산 끼워넣기 등 구태가 올해도 반복될 것 같다”고 말했다. 당초 정치권은 지난 5월 통과한 국회선진화법안에 예산안 법정 시한인 12월2일 48시간 전까지 예결위 심사가 끝나지 않을 경우 본회의에 자동 회부하도록 예산안 처리 기준을 명시했지만 이 법은 내년 3월부터 발효가 돼 올해는 무용지물이다. 게다가 올해는 정부의 세종시 이전 문제까지 얽혀 예산안 처리 지연으로 인한 혼선이 가중될 전망이다. 기획재정부는 내달 7~16일 세종시로 이전할 계획이지만 국회의 예산안 처리가 대선 이후로 넘어가는 것이 확실해지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졌다.

  ‘이해찬 세종시 법안(교부금 증액 특별법)’ 에 타 지자체 강력 반발

정치권 지원법안 서두르자 非충청권 "우리 몫 수백억 감소" 연판장

"재정 가뜩이나 어려운데 지방비로 충당해선 안돼"

국회 23일 본회의 통과 가능성…'충청권 표 노린 카드' 해석도

정치권이 세종시와 통합청주시 등 충청권 지원 법안을 이번 정기 국회에서 통과시키려고 하자 다른 지방자치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등 논란을 빚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충청권의 표심을 공략하기 위한 카드인 만큼 여야의 합의 통과 가능성이 높지만 입법 과정에서 난항이 예상된다.

18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19일 전체회의를 열고 ‘세종특별자치시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과 ‘충북 청주시 설치 및 지원 특례에 관한 법률안’에 대해 논의를 시작한다. 20일에는 법안심사소위가, 21일에는 다시 전체 행안위 회의가 예정돼 있으며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23일 본회의에서 처리될 가능성도 있다.

  논란의 대상 ‘이해찬 법안’

세종시 특별법 개정안은 세종시를 지역구로 하는 이해찬 전 민주통합당 대표가 발의했으며 민주당 의원 전원과 새누리당 충청권 의원 등 155명이 공동 발의에 참여했다. 개정안은 세종시에 적용하는 재정 특례를 현행 ‘보통교부세 산정액의 25%를 5년간 추가 교부’에서 ‘보통교부세 총액의 1.5%를 매년 교부하고 2030년까지 총액의 3%까지 되도록 단계적으로 상향 조정’으로 변경하는 게 핵심이다.

국회의 법안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7월1일 출범 이후 세종시에 교부된 보통교부세는 교부세 총액의 0.37%인 1069억원이다. 현행 규정에 따라 기준재정수요액과 기준재정수입액 차액의 25% 이내 금액을 더한 규모를 특례 형태로 보전해주면 2013~2017년 총 1560억원, 매년 312억원을 추가로 교부하게 된다.

반면 개정안에 따라 보통교부세 총액의 1.5%를 세종시에 배분하면 올해 4378억원을 지원받게 돼 기존 방식에 비해 3309억원 늘어나게 된다. 그만큼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배분액은 감소하게 된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에 주는 중앙정부 보통교부세는 올해 29조원가량인데, 총액이 고정돼 있기 때문에 세종시에 더 지원하면 다른 지자체는 그만큼 지원 규모가 줄어드는 ‘제로섬 게임’ 구조이기 때문이다. 지자체별로 보면 시·군·구의 교부세까지 합쳤을 때 경북이 566억원, 전남 495억원, 강원 371억원, 전북 349억원, 경남이 348억원 깎이게 된다.

  민주당, 청주시 특례 법안까지 마련하여 지원 약속

이와 함께 충북 청원군이 지역구인 변재일 민주당 의원이 청주시와 청원군의 통합을 지원하기 위해 동료 의원 14명을 대표해 발의한 ‘충북 청주시 설치 및 지원특례에 관한 법률안’도 2010년 마산·창원·진해가 통합할 때 제정됐던 창원시 통합법을 넘어서는 수준의 행정·재정적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통합창원시의 경우 교부세 부족액을 지원해주는 특례를 4년간 보장했지만 통합청주시에는 그 세 배인 12년간 보장토록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시청사 신축 비용 1200억원, 시내버스 적자 보전 비용 연간 120억원 등에 대한 지원 약속도 담고 있다.

  지자체들 강력 반발 이유

이에 대해 시·도지사협의회와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는 연판장을 돌리고 성명서를 준비하는 등 결사항전 태세를 보이고 있다. 김수연 시·도지사협의회 책임연구위원은 “세종시 지원 특별법 개정안은 재정 상황이 열악한 지자체의 살림을 쪼개 세종시를 지원하게 되는 꼴”이라며 “세종시가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목적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출범 취지와 목적에 맞게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한걸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사무처장도 “개정안대로 세종시 재정 특례가 적용되면 시·도는 수백억원, 시·군·구는 수십억원씩 한 해 교부세가 줄어든다”며 “가뜩이나 열악한 지방재정 수준에서는 감당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