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그릴 수 있는 최상의 곡선과 섬세한 동선. 짐짓 느리게 거닐다가 이따금 수건을 오른팔 왼팔로 옮기고, 때로는 던져 떨어뜨려 몸을 굽히고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준보유자 (秀堂)정명숙 선생

엎드려 두 손으로 공손히 들어올리기도 한다. 떨어뜨리는 동작은 불운의 살이라 할 수 있고, 다시 주워 드는 동작은 기쁨과 행운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선의 미가 극치를 이루는 신비스럽고 환상적인 춤사위로 수건춤 혹은 즉흥무라고도 불리는 살풀이춤은 우리 민족의 정서를 담아 아름다운 춤사위로 표현하고 있다.

  한국 춤의 대가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무희

다섯 살 때부터 춤을 시작한 그녀는 6.25 전쟁의 여파로 잠시 배움을 멈추기도 했다. 하지만 고등학생 시절 사촌언니를 통해 다시 춤을 배우다가 스무살 때 서울로 상경해 전문적으로 춤을 시작하게 되었다.

전쟁은 경제 불황을 불러왔고 모든 사람들이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녀 역시 마찬가지로 춤을 배우기에는 몹시 열악한 환경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최고의 스승들을 만나 품격있는 춤사위를 사사받게 돼 현재의 자리에 이를 수 있었다.

그녀는 “최현 선생님께는 창작춤의 묘미를, 김진걸 선생님께는 깨끗하고 격조있는 산조 춤사위를, 한영숙 선생님께는 고고하고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춤사위를, 그리고 중요무형문화재 제 92호 태평무 보유자 강선영 선생님으로부터 멋 떨어지는 흥을, 故)김숙자 선생님으로부터 무속적인진수를, 이매방 선생님께는 이 모든 것을 합작한 예술성을 사사받게 되었습니다. 그 분들께 춤을 한가락이라도 더 배워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없어 아쉬울 따름입니다”라며 스승님들에 대한 감사를 표현했다. 선생들게 전수받은 춤사위로 그녀는 현재 많은 관객들의 감동을 자아내고 있다.

그녀는 “춤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춤사위가 아닌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머릿속에는 항상 철학을 담고, 마음이 가는데로 손짓을 움직이게 되면 비로소 춤의 경지에 이를 수 있게 됩니다”라고 말한다.

  “춤은 내 인생, 내 삶”

한국의 전통춤은 작은 손짓, 발짓이 곡선을 그려 단아한 아름다움을 선사함과 동시에 긴 역사의 시간만큼 민족의 정서가 스며있다. 그녀 역시 오랜 세월 한국춤과 함께해 차를 마시는 손짓과 표정에 한국춤이 가지는 단아한 선이 고스란히 체화돼 있었다. 그녀는 “춤이란 내 인생이고 내 삶입니다. 일생을 춤과 함께 해왔고, 또 앞으로도 춤과 영혼을 함께 할 것입니다”며 춤에 대한 그녀의 자세를 밝혔다.

그녀는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제 97호 살풀이춤 보유자 준보유자로 “형식적으로만 보유자가 아닌, 내적으로도 진정한 보유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가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품격있는 춤을 추고 싶습니다. 영혼을 울리는 춤을 추기 위해 항상 내적인 부분을 가다듬으려 살아갈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전통춤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미흡한 것을 지적하며 “국내 무대의 경우도 거의 대부분 서양식으로 만들어져 있어, 관객들과 함께 어울리며 호흡하기가 힘듭니다”고 말했다.

전통춤의 경우 대부분 관객들 과 어울리며 함께 즐겨야 그 맛이 살아난다. 하지만 국내의 공연장은 모두 관객석과 무대가 멀리 떨어져 있는 서양식 구조를 갖추고 있어 춤사위의 감동이 관객들에게 직접적으로 전해지기 힘든 실정이다. 그녀는 세계에 전통춤을 알리고자하는 열망으로 관련 기관의 적극적 지원을 요청했다. 정책적 지원이 수반된다면 한국 고유의 아름다움이 세계로 나아가는 발판 마련이 좀 더 쉬워질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작은 소망이 있다면, 살풀이춤이 세계적인 춤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살풀이춤이 유네스코에 오를 수 있도록, 남은 일생을 춤과 함께 하겠습니다. 또 사랑하는 제자들과 저의 곁에서 친구처럼 함께 해주는 이들과 평생지기로 남고 싶습니다”며 전통을 이어가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한명의 개인으로서 바람을 밝혔다. 이미 세계에서 찬사를 받고 있는 한국 전통춤.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지는 그녀의 한국춤에 대한 애정과 춤사위의 깊이가 한국춤을 세계에 알리는데 큰 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절제와 곡선의 부드러움으로 한국의 한을 풀어내다

수당 선생의 살풀이춤은 절제와 곡선의 부드러움. 강약의 흐름 속에 맺고 푸는 동작을 통한 한국적 아름다움과 한을 풀어내는 감동의 춤사위로 가온홀을 가득 메운 관객으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 수당 선생은 또 대구에서 활동하는 동부민요 박수관(델픽 세계문화 무형문화재), 달구벌 북춤 황보영(한밭 전국 국악대회 명무부 대통령상 수상) 등과 함께 승무, 교방무, 무당춤 등 협연도 했다. "전통춤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신체적인 조건도 있었지만 한국적 미와 정서가 담긴 우리의 춤을 추고 싶었지요. 우리 민족은 한(限)의 정서가 있어요. 살풀이춤은 인간의 내면에 내재한 한과 액을 풀어내고 더욱 더 밝은 세상을 향해서 나아가고자 하는 의식이며 온몸의 에너지를 분출하여 소통하는 언어라고 보면 됩니다."

수당 선생은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우리가 지키지 않으면 누가 지켜 주느냐"며 "살아 있는 날까지 후배 양성은 물론 우리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秀堂 정명숙 프로필

경북여자고등학교 졸업

건국대학교 영문학과 고려대학교 체육교육대학원 연구과정 수료

키르키즈스탄 비비사라 베쉴라리바 국립예술대학 명예예술학박사

현)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보유자후보

현) 정명숙 전통춤 예술단 예술감독

현) 사단법인 한국전통예술진흥회 부이사장

현) 사단법인 판소리고법보존회 부이사장

전) 국립무용단 1기생, 사)한국무용협회 창단위원. 이사

전) 사단법인 전주대사습놀이 보존회 이사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이매방류) 1호이수

뉴욕 카네기홀 개인발표회 등 총 31회 개인발표회

문화재 전승자과정 표창장 수상, 한국문화예술총연합회 문화예술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