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세계로 가는 얼굴

정춘표 조각가의 작품은 그동안 눈에 익었다.

생명을 그득하게 채운 채 우주 공간을 유영하는 둥근 별처럼 부드럽고 풍요로운 존재들이다. 때로는 아이들을 동반했고 때로는 자매들이 등장했다. 같이 함께 가는 이들이 모여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거의가 혼자다. 몸은 여전히 따뜻하고 붉은 볼은 잔뜩 부풀어 있지만 그녀는 오로지 홀로 있다. 다만, 혼자 있는 존재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그녀의 시선에 변화가 왔다. 무엇보다 아득하게 멀다. 그러면서도 깊고 그윽한 눈이다. 기실 작품들은 매번 새로워야 하고 미학의 세계 역시 변화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변화는 무엇일까? 결국 ‘유아독존’의 경지에 근접해 있다는 것일까? 작품에 더 흥미가 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돌이켜보면 그러한 조짐은 처음부터 있었다. 그동안 정춘표의 작품에는 변하지 않는 두 가지 성질이 있었다. 그것은 우주의 형상이라고 추정되는‘구체’ 그리고 흐르는 물이 그려내는 유연한 ‘곡선’이다. 이는 깨달음의 원형 이었던가 선각자들의 오래된 공통어였다. 이번에도 둥글고 부드럽다. 기조는 변함이 없다. 때문에 ‘막상’ 홀로 선 존재들은 누군가와 같이 있을 때보다 더욱 깊고 간절한 느낌을 전달한다. 그래서인지 작품을 마주대하는 관람자도 심상치 않은 마음이다. 내면에의 응시를 유도하려는 듯 마음이 뭉근히 가라앉고 보는 내내 평온 아래로 침잠한다.

더불어 찾아지는 자그마한 재미 하나가 더 있다. 그것은 두드러지지 않게 처리된 꽃들이다. 특이한 종류도 아니거니와 형상화한 것들이 아닌, 따분할 정도로 평범한 꽃송이들이다. 무슨 꽃인지 모를, 그러나 분명한 느낌은 ‘꽃이다’. 이들은 의자에 장식되어 있기도 하고 주변에 점점이 피어있기도 하며 손에 들려있기도 하다. 신기한 것은 꽃이 사람을 그대로 닮아 있다는 점이다. 꽃이란 식물은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섬세한 생김새에 신의 존재를 느낄 정도로 아름다움의 극치를 내보인다. 그런 꽃의 섬세함을 허물고 무디게 피어나 여성 인간을 고요히 보좌하고 있다. 예각이 다 사라져버린 꽃들은 오랜 세월 보내고 연민에 가득 차 돌아온 묵은 첫사랑에게 애틋하다

이렇게 정춘표 조각가는 새로우면서도 은근하게 다가왔다. 여인상들 역시 현대적 미인이기보다는 오스트리아의 빌렌도르프 비너스처럼 둥근 몸들을 동그랗게 마는 형태로서 순진무구하고 천진하다. 동그란 느낌의 살집 있는 몸과 얼굴, 완만한 산처럼 뭉툭한 코와 좁고 도톰하면서 둥글게 말린 입술은 전체적으로 어느 곳을 보든 똑같은 동그라미를 떠올리게 한다. 작품에는 각이 없어 꽃과 함께 평화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정춘표 작품의 특징을 제대로 담아내는 재질은 역시 대리석이다. 여성의 몸을 아름답게 해주는 지방질의 느낌이 살아있되 차갑지 않은 성질, 가벼운 화장처럼 뽀얀 살색 그것의 특징을 이처럼 잘 구현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작가는 유독 대리석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럴 수밖에. 하지만 수정체가 유독 빛나는 눈외에 전체적으로 연약한 외모라 할 수 있는 정춘표 조각가의 집념처럼 품어온 대리석 작업이라니 게임이라면 일단 한 포인트는 내준다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