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색채와 섬세한 필치의 ‘꽃의 화가’ 

Lim, JungHee 임정희 화가

작가 임정희는 꽃을 통해 자연에 대한 진지하고 성실한 관찰을 바탕으로 객관성을 확보하고, 이를 자신의내면으로 끌어들여 재가공한다. 꽃을 지지체로 삼아 명징한 원색과 과감한 필치로 구축되는 작가의 화면은 자연과의 교감에서 포착된 강인한 생명력이 물씬 배어 나오는 특징이다. 꽃은 단순한 유미의 대상이 아니라 자연의 또 다른 모양이며, 생명의 구체적인 증거이다.

  꽃으로 표출되는 과감한 필치

자연은 인간에게 삶의 조건인 동시에 예술의 원천이기도 하다. 이러한 자연을 여하히 바라보고 감응하는가에 따라 삶은 물론 예술의 양태 역시 달라지게 마련이다. 작가 임정희는 꽃을 작업의 지지체로 삼아 독특한 개성을 구축하였다. 명징한 원색과 과감한 필치로 구축되는 작가의 화면은 자연과의 교감에서 포착된 강인한 생명력이 물씬 배어 나오는 특징적인 것이었다. 작가에게 있어서 꽃은 단순한 유미의 대상이 아니라 자연의 또 다른 모양이며, 생명의 구체적인 증거였을 것이다. 활달한 필치로 대상에 육박하는 작가의 구상력은 단순히 꽃이라는 대상의 재현 단계를 넘어 그것이 지니고 있는 강한 생기를 유감없이 드러내는 것이었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작가가 표출하고자 하는 작업의 요체이자 핵심이었을 것이라 여겨진다.

인간성의 고뇌와 감성을 꽃으로 표출

견고한 구상적 표현 능력과 대상과의 교감을 통해 섬세한 감성을 통해 포착해 낸 생명의 기운들은 경우에 따라서는 호방하고 장식적인 것이 복잡하게 표현되어 여성적인 섬세함이 두드러지는 로코코 양식의 정물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만약 로코코 양식이 물질적으로는 이미 충분히 풍요로웠지만 그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애환과 고독, 그리고 인간성의 고뇌와 정서들이 장식적인 색채와 표현으로 표출된 것이라 한다면, 작가의 작업 역시 이와 일정 부분 유사한 전형을 지니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작가의 주 관심사는 단순히 꽃으로 표현되는 자연의 표피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것에 내재되어 있는 대자연의 외경스런 생명력과의 교감에서 비롯되는 민감하고 섬세한 감성의 표출이기 때문이다.  

꽃의 자율적인 형상을 붓으로 살려내다

작가에게 있어서 꽃은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라 인간, 혹은 인간의 삶을 대변하는 상징이라 여겨진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에서 욱욱한 생명력을 드러내는 꽃들은 어쩌면 이러한 인간과 그 삶에 대한 축복이자 찬사일 것이다. 이전의 작업들이 섬세한 묘사와 강렬한 터치로 이루어진 자연, 혹은 생명에 대한 찬사였다면, 근작에 나타나는 현상들은 뚜렷한 변화의 양태를 보이고 있다. 화면은 단순화, 간략화 되어 꽃의 가장 본질적인 형태만을 지향하고 있다. 일정한 에너지를 동반한 과감한 필치는 여전하지만 보다 거칠고 질박하다. 강렬한 명암의 대비로 햇빛의 축복을 한껏 드러내던 화면은 명암의 배제로 침잠하는 깊이를 확보하고 있다.

이렇게 구축되어진 화면은 일종의 사유와 사색의 공간이며, 육안으로 감지되는 현상의 현란함에서 벗어나 또 다른 차원으로의 전이를 도모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붓의 자율성을 살린 분방한 터치는 거칠지만 질박하고, 개괄적으로 표현된 꽃의 형상들은 오히려 보는 이에게 강한 여운의 공간을 확보해 주고 있다. 그것은 단지 육안으로 전해지는 시각적 자극이 아니라 감정에 호소하는 감성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꽃은 아름다움을 생명의 기운을 불어 넣었다

꽃의 명암에 의한 사물 표현의 기능적 운용을 자제하고 작가의 순간적인 호흡과 감정을 반영하는 분방한 터치에 의한 화면의 구성은 일정한 평면화의 경향을 지니게 마련이다. 작가의 작업 역시 이러한 경향이 여실하다. 이는 대상에 대한 관찰과 표현에 있어 그 목적이 단순한 대상의 객관적 묘사나 재현이 아님을 의미하는 것이다.

현상의 번잡스러움에서 벗어나 심안(心眼)에 의해 대상을 자신의 내면에 수용하고 이를 조형 언어로 표출하는 작업 방식은 이미 객관의 조건에서 벗어난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사유와 해석을 바탕으로 보다 주관적이며 적극적으로 대상을 해석하고 표현해 냄으로써 내밀한 자기화의 과정에 들고 있다 할 것이다. 이전의 작업들이 엄정한 사실성을 전제로 한 구상적 화면의 얼개를 지닌 것이었음을 상기한다면, 작가의 신작들에 나타나는 변화의 양태들은 자못 흥미로운 것이 아닐 수 없다. 꽃은 아름다운 자연물이기 이전에 생명의 상징이다.

작가가 꽃을 소재로 삼음은 그 자태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꽃이 지니고 있는 생명의 상징성에 주목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간 작가의 화면에 등장하는 꽃들은 화려하고 풍성한 화훼류가 대부분이었다. 붉은 장미나 백합, 혹은 단아한 정물로 연출된 꽃들의 표정들은 귀족적인 화려함과 장식적인 아름다움을 바탕으로 싱그러운 생명력을 표출하던 것이었다.

새삼 눈길이 가는 것은 근작에 등장하기 시작한 작고 소소한 야생화들이다. 굳이 빼어나거나 화려하지 않지만 그 작은 꽃 속에도 생명의 기운은 여실하다.

육안의 세계에서 벗어나 그윽한 꽃향기를 내 뿜는다

작가가 이들에게 눈길을 주고 특유의 감성으로 수렴하여 화폭에 담음 역시 단순한 소재의 확장이라는 소극적 의미라기보다는 꽃이라는 자연을 통해 확장되어가는 작가의 사유가 반영된 결과라 여겨진다. 작은 꽃들에 일일이 눈길을 주고, 또 그것을 거둬들여 화면에 안착시키는 과정은 어쩌면 소소한 삶의 편린들에 대한 새삼스러운 관심인지도 모른다. 더불어 잊혀진, 혹은 소외된 것들에 대한 진솔한 애정의 발로일지도 모른다. 앞서 로코코 양식이 물질적 풍요 이면에 담겨있는 인간의 애환과 고독, 그리고 인간성의 고뇌와 같은 것들을 장식적인 색채와 화려한 표현으로 표출한 것이었다는 대목이 새삼 상기되는 이유이다.

신작들은 형태나 색조, 구도 등에 있어서 모두 이전의 작업들과는 달리 소박하고 질박하며 단순화된 경향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는 장차 작가의 작업이 여하히 변화하고 진행될 것인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내용들이다. 작가는 자연에 대한 진지하고 성실한 관찰을 바탕으로 객관성을 확보하고, 이를 자신의 내면으로 끌어들여 재가공 함으로써 주관화 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작가는 객관이라는 육안의 세계에서 벗어나 심안의 그윽한 사유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작가가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는 생명에 대한 경외이자 찬사의 확장과 심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