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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고르기 없는 무더위
[2호] 2018년 07월 22일 (일) 15:55:56 이권원 시인 kbshdtv@hanmail.net

숨고르기 없는 무더위

올해 여름은 7일 소서를 시작으로 초복, 대서, 중복이 7월에 집중되어 있다 보니 더위에 적응하기가 유독 힘들지 않을까 걱정이다.

한낮의 열기가 밤까지 계속되는 열대야(熱帶夜). 최저기온이 섭씨 25도 이상인 무더운 밤을 이르는 말이다. 가열된 아스팔트 도로와 콘크리트 빌딩에서는 복사열을 뿜어내고, 자동차와 건물의 에어컨에서 분사시키는 냉방열에 한밤중까지 무더위가 숨고르기 없이 이어지는 요즘의 여름이다.

여름은 더운 대로 겨울은 추운 대로 자연스레 받아들였던 과거의 생활방식과는 반대로 이기(利器)에 의존해 더위와 대결하는 ‘역순응’의 생활방식이 불러온 사태일 것이다. 문명의 혜택이 적었던 그 시절 우리선조들은 삼복무더위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배우고 또한 실천해볼 일이다.

선조들의 일상 피서

   
 

조선 후기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인 1824년, 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자 『여유당전서』에 ‘더위를 물리치는 여덟 가지 멋진일(消暑八事)’이라는 시를 지어 지혜로운 피서법을 제안했다.

그 첫째는 송단호시(松壇弧矢)인데, ‘솔밭에서 활쏘기’를 뜻한다. 둘째는 괴음추천(槐陰韆)으로 ‘느티 나무 그늘에서 그네타기’이다. 셋째는 허각투호(虛閣投壺)로 ‘빈 누각에서 투호 놀이’를 하는 것이다. 넷째 청점혁기(淸奕棋)는 ‘깨끗한 대나무 자리에서 바둑 두기’이다. 다섯째는 서지상하(西池常夏)로 ‘서쪽 연못의 연꽃 구경하기’를 제안했다. 여섯째는 ‘동쪽 숲속에서 매미소리 듣기’를 뜻하는 동림청선(東林聽蟬), 일곱째는 ‘비 오는 날 시 짓기’를 뜻하는 우일사운(雨日射韻), 여덟째는 달밤에 개울에서 발 씻기를 뜻하는 ‘월야탁족(月夜濯足)’이다.

소나무 숲에서 활쏘기 놀이를 즐기면서 더위를 식히고,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서 그네를 타면서 온몸으로 바람을 만끽했으며, 대자리 위에서 바둑을 두며 외부 환경이 아닌 마음과 정신에 집중했다. 선비들은 더운 날씨에 책을 읽기 힘들 때면 주위 사람들과 술내기 바둑을 두면서 당사자는 물론이거니와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에게도 대접하며 서로 어울려 여유를 즐겼다.

연못에서 고운 연꽃을 감상하며 청아한 여름 풍경을 만끽하는 방법은 어떤가. 해가 서산으로 지려할때 어느 때보다 낭낭하게 울려 퍼지는 매미소리를 들으며 더위를 식히는 방법도 낭만적이기 이를 데 없다. 특히 농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여름날 울려 퍼지는 매미 소리가 얼마나 시원한지 잘 알 것이다.

그래서 한 시인은 “자줏빛 놀 붉은 이슬 맑은 새벽하늘에 / 적막한 숲 속에서 첫 매미 소리 들리니 / 괴로운 지경 다 지나라 이 세계가 아니요 / 둔한 마음 맑게 초탈해 바로 신선이로세 / 매미 소리만 듣고도 모든 것을 초탈해 신선이 된다면 더위쯤이야 문제될리 없다”라고 읊었다. ‘비 오는 날 시 짓기’는 비오는 날에는 다른 일을 할 수 없으니 농막 안에서 시를 지으며 더위를 보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1,000편의 시를 지어놓고 어떤 운자(韻字)가 어려웠는지를 하나 하나 따지다 보면 저절로 더위가 사라진다고 했다.

여름에 산간 계곡에 발을 씻어 더위를 식히는 ‘탁족(濯足)’은 참으로 지혜로운 세시풍속이다. 탁족은 가까운 냇가나 계곡 폭포에 다녀오는 당일치기 피서 개념으로, 탁족이라는 단어는 “창랑의 맑은 물로는 갓끈을 씻고, 창랑의 흐린 물로는 발을 씻는다(滄浪之 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라는『맹자(孟子)』의 글귀에서 비롯됐다.

선비들은 몸을 노 출하는 것을 꺼렸기에 발만 물에 담갔던 것인데, 발은 온도에 민감한 부분인데다 발바닥에 온몸의 신경이 집중되어 있으므로 발만 물에 담가도 온몸이 시원해지는 이치가 반영된 것이다. 정말 선비답고도 과학적인 피서법이 아니겠는가.

‘소서팔사’의 장면들을 상상만 해도 더위가 물러가는 느낌이다. 그런데 다산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더 위를 잊게 할 또 다른 방법을 생각했다. 그것이 바로 쓸모없는 나무를 베어 바람이 통하게 하거나 도랑을 쳐서 물이 꽐꽐 흐르게 하는 것이다.

축 늘어진 소나무 가지를 들어 올려 그늘을 만들고 포도 줄기를 처마에 올려 그늘을 만들어 놓으면 햇빛을 막을 수 있다. 무더운 날 장마에 눅눅해진 책을 꺼내 햇볕에 말리기도 했다. 우리에게 낯설기는 하지만 한가롭고 여유로운 삶이다. 어디에 꼭 가야만 더위를 피하는 게 아니지 않는가.

다산 선생이 소개한 더위를 물리치는 방법은 일상을 벗어나지 않고 일상 속에서 심신을 단련하거나 취미 활동을 하며 더위를 잊는 정신적인 극복이라 할 수 있다.

『기산풍속화첩』 중 <단오날 그네타기>. 옛 사람들은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서 그네타기를 하며 더위를 식혔다. ⓒ문화콘텐츠닷컴 04. 달밤에 하는 탁족은 더위를 식혀줄 뿐만 아니라 운치와 낭만까지 즐기게 해준다. ⓒ이건원 05. 도서관을 찾아 독서에 몰입하는 도시 바캉스 방법도 있다. ⓒ셔터스톡 06. 조상들이 더운 여름에 잠자리에서 더위를 식히기 위해 사용했던 죽부인은 현대인에게도 인기다. ⓒ국립민속박물관

현대인들의 도시 바캉스

   
 

정신적 더위 극복이 핵심인 조상들의 일상 피서와 성격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현대에는 국내외 여행지로 멀리 떠나는 대신 일상공간 혹은 일상공간과 가까운 곳에서 휴가를 보내는 도시 바캉스족이 늘고 있다.

현대 도시 바캉스가 조상들의 소박한 일상 피서와 차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고급’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호텔(hotel)과 바캉스(vacance)의 합성어로 호텔에서 편안하고 고급스러운 휴식을 즐기는 ‘호캉스족’이 그렇다. 비행기 요금을 아껴 그 돈을 숙소에 투자하는 것이다.

출퇴근길 매일 지나치기만 했던 5성급 호텔에 묵으며 최고급 침구에 누워 쉬고 야외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며 호사를 즐긴다. 호캉스가 인기를 끄는 가장 큰 배경은 바로 소비자들의 인식 전환이다.

지금 이 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살자는 삶의 태도, 바로 ‘욜로(YOLO)’도 그중 하나다. 그렇기에 보고 듣고 느끼는 체험과 경험을 중시해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휴가도 자신을 위한 선물로 간주해 고급 호텔에서의 휴식을 선물하는 것이다. 혼자 사는 1인 가구나 맞벌이로 휴가 일정을 잡기 곤란한 가정이 많은 것도 호캉스로 대표되는 도시 바캉스를 떠오르게 한 배경이다.

물론 호텔까지도 가지 않고 집에서 휴가를 보내는 ‘홈캉스(home+vacance)’도 있다. 집에 머물며 보내는 휴가란 의미로 ‘Stay’와 휴가를 뜻하는 ‘Vacation’을 합성해 ‘스테이케이션(Staycatio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명칭이 무엇이든 결국은 숙소, 교통편 예약하고 인파에 치이며 피로를 겪느니 집에서 휴가를 즐기겠다는 것이다. 부담스러운 휴가 비용도 홈캉스를 택하는 이유다.

집에서 셰프가 만든 고급 요리를 먹고 미뤄뒀던 드라마나 영화를 몰아 보며 진정한 휴가를 즐긴다. 집 근처 공중도서관, 조금 멀게는 영화관이나 공연장을 찾아 문화생활을 하는 것도 빠질 수 없는 홈캉스 일정이다. 시간에 쫓기지 않는 것만으로도 호사이니 말이다.

필자는 특이한 방법으로 여름을 고난의 행군이 아닌 즐거운 산책으로 보내고 있다. 평소에 깊은 산속에 이름 있는 폭포를 찾아 물보라 일며 낙하하는 폭포의 괴성을 동영상에 담고 바다를 찾아 단숨에 삼킬 듯한 맹호 같은 파도 소리, 그리고 사랑짓하며 우는 새들의 다양한 지저귐을 동영상으로 담아놓았다가 무더운 날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누워 듣곤 한다.

소소한 방법으로 더위를 잊었던 조상들의 일상 피서법, 그리고 멀리 떠나는 대신 집이나 회사와 가까운 곳에서 더위를 피하는 도시 바캉스는 묘하게 닮아있다.

장소는 중요치 않다. 일상에서 떠나는 방법엔 꼭 장소를 이동하는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상과 다른 시간, 일상과 다른 경험이 휴가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무언가에 몰입하여 더위를 잊었던 조상의 풍류를 곱씹어보길 권한다. 글. 이건원(시인) 문화재청 자료재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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