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처음으로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원전을 수주해 세계 원전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했다. 이번 UAE 원전 수주는 ‘국제 원전 플랜트 마피아’의 일원으로 알려진 프랑스와 겨뤄 이겼다는 점과 선진국가들과의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는 점에서 해외건설 수주사의 한 획을 긋는 큰 성과다. 우리나라가 총 400억 달러(약 47조원)규모의 UAE 원전 사업을 수주함으로써 산업계는 물론 온 국민을 새해 희망에 부풀게 했다. 한국형 원전 수출에 물꼬를 텄다 해서 당장 한국경제의 근본적인 위기 구조가  해소되는 건 아니겠지만 위축된 경제에 새로운 돌파구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4기의 원전 건설로 연간 4000만톤의 온실가스 감축효과가 발생, 세계 온실가스 대응에도 기여하게 됐다. 원전의 CO2 배출량은 석탄의 1/100수준에 불과하다.

MB, UAE 원전 수주 치하 친서 전달
이명박 대통령은 30일 UAE 원자력발전소 공사를 수주한 것과 관련, 지식경제부와 외교통상부, 총리실에 축하떡과 친서를 전달했다. 이 대통령은 친서에서 "UAE 원전 수주에 노고가 많았다"며 "우리 모두 함께 힘을 모아 큰 성과를 이뤄냈다"고 치하했다. 이어 "정말 어려웠던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면서 국민에게 희망찬 소식을 전하게 돼, 대통령으로서 매우 기쁘고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여러분이 매우 자랑스럽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또 "앞으로 우리가 이뤄야 할 일이 더 많다"며 "대한민국이 진정한 원전 강국으로 세계 속에 인정받기 위해 기술 개발과 인력양성에 더욱 힘써야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 대통령은 "다시 한 번 UAE 원전 수주를 대한민국 국민과 함께 축하하며, 앞으로도 여러분의 더욱 큰 역할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원전 수주 첫 관문 돌파…핵 주기 완성 주장 힘 실려
UAE 낭보를 필두로 터키와 요르단에도 원전 수출을 추진 중이라는 뉴스가 잇따르고 전 세계에 1조 달러 시장이 열렸다는 속보까지 나왔다.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시아 및 동유럽 국가 진출과 미국 인도 중국 등 거대 시장 공략도 가능하다는 의욕이 넘친다. 차제에 한ㆍ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해 우라늄 농축과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까지 국내에서 할 수 있도록 핵 주기를 완성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하면 핵무기 제조에 쓰이는 플루토늄 추출이 가능해 미국 측은 이 문제를 포함한 협정 개정에 매우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해 왔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안정적인 연료체계를 확보해야 하므로 어떻게든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 핵주기 완성론의 요지다. 그러나 미국과 프랑스 일본 등이 주도하고 있는 세계 원전 시장의 구도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이번 UAE 원전 수주는 첫 관문을 열어 일단 시장 진입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의미할 뿐이다.

한국형 원전 해외시장 확대 위해 국내 업체간 협력 강화해야
이번 수주 총액 400억 달러 중 200억 달러는 10년 동안 발전소를 책임지고 지어주는 비용이며 나머지 절반은 60년 동안 발전소를 운영해주는 비용이다. 운영의 뜻은 핵연료를 공급해주면서 발전소가 잘 돌아가게 유지하고 보수하는 일을 포함한다고 보면 된다. 한편 ‘책임지고’의 뜻은 발전소가 완성되기까지의 모든 일, 즉 그 구성을 설계하고 자재를 조달해 시공을 끝낸 후에 발주자에게는 열쇠만 넘겨주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번 사업은 ‘발전플랜트EPC Turn-key사업’에 ‘발전플랜트 운영사업’이 더해진 것으로 보면 된다. 일부 언론에서는 일상적인 용어로서 ‘한국컨소시엄’이 수주했다고 하나 참여자 간의 지분배분에 관한 소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전문용어로서의 컨소시엄 수주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국내 업체들은 지난 40년 동안 줄곧 발주ㆍ운영ㆍ기자재조달ㆍ시공을 함께 해오며 손발을 맞춰왔다. 여기에 발주처와 업체 간 오랜 기간 축적돼온 상호 협력 시스템과 신뢰라는 보이지 않는 경쟁력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원전 건설현장의 첨병 역할을 할 현대건설ㆍ삼성물산 등 시공사들은 지난  1972년 고리원자력 1호기 이후 40년 가까이 꾸준히 이어진 국내 원전 건설을 통해 풍부한 시공경험을 가진 베테랑 전문가들을 보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특히 전문가들은 이번 UAE 원전 수주가 한국형 원전의 지속적인 해외 시장 확대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발주처인 한국전력, 기자재를 맡고 있는 두산중공업, 그리고 시공을 담당하는 건설업계 간의 수평적 협력 시스템을 더욱 강화해나가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건설업계는 이번 UAE 원전 수출의 파급효과는 이번 수주에 참여한 현대건설과 삼성물산 건설 부문 두 회사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오는 2030년까지 430기에 달하는 원전 발주물량이 예상되고 있는데다 ‘플랜트의 꽃’이라 불리는 원전 수출을 통해 시공능력을 검증 받은 만큼 다른 국내 경쟁사들의 해외원전시장 진출과 기존 플랜트 수주에도 파급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3대 핵심 기술 빠진 한국형 원전 국산화율…갈 길 멀다
향후 이 사업의 추진이 원활히 되기 위해서는 해외건설촉진법이나 엔지니어링진흥법, 원자력사업법 등 관련법령을 내세운 임의적인 규제로부터 자유스러워야 한다. 사업진행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진행돼야 약속한 공기를 맞출 수 있기 때문에 관련 법제도나 규정들도 뒷받침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형 원전을 100% 국산화하기 위해서는 원전 설계 핵심 코드와 원전제어계측장치(MMIS) 원자로냉각제펌프(RPC)등 3대 핵심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이들 3대 핵심 기술은 현재 원전 국산화율에서 빠진 5%에 불과하지만 주기기 설비 공사에서 거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이들 기술은 현재 미국의 웨스팅하우스와 일본의 도시바, 프랑스의 아레바 등이 갖고 있다. 우리가 수주한 UAE 원전 사업에서도 3대 핵심 분야는 도시바와 자회사인 웨스팅하우스가 맡게 된다. 한전컨소시엄에서 웨스팅하우스가 하청업체로 참여한다지만 핵심 기술은 하청업체에 의존하는 형편이니 그리 자랑할 만한 일은 되질 못한다. 이에 정부는 2012년까지 3대 핵심 기술을 완성해 국산화율 100%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기술 개발은 유능한 국내 전문가들에게 맡긴다 해도 해외시장 확대는 국내 기반 정비와 이를 바탕으로 한 치밀한 대외 전략을 요구한다. 핵연료 재처리를 비롯한 핵주기 완성은 일방적인 요구로 내세울 게 아니라 현 단계에서 어느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우리에게 유리할지 전략적 측면에서 정부와 학계가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